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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가 모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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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드가 모랭은 1921년 파리에서 태어난 유대계 프랑스 지식인으로, 사회학, 철학, 영화 이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그는 프랑스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하고 공산당 활동을 했으나 비판적인 시각으로 인해 제명되기도 했다. 모랭은 잡지 '아르귀망'을 창간하고 '자아 비판' 등의 저서를 통해 사상을 펼쳤으며, 라틴 아메리카 여행을 통해 대중 문화 연구를 진행했다. 그는 복잡성 사고, 초학제성, 방법론 등을 강조하며, 유네스코 복합사고 의장으로 활동하며 21개의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다. 모랭은 '방법'을 비롯한 다수의 저서를 출간했으며, 2021년에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 그랑크루아를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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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가 모랭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2011년의 에드가 모랭
2011년의 에드가 모랭
출생명에드가 나훔
출생일1921년 7월 8일
출생지파리, 프랑스
국적프랑스
학력
모교파리 대학교
경력
소속 기관CNRS
사회과학고등연구원 (EHESS)
주요 저서
주요 저서La méthode (방법론) (1977–2004, 6권)
사상
학파대륙 철학
반환원주의
구성주의적 인식론
반기초주의
주요 관심사인식론
복잡계
사회학
영향헤라클레이토스
앙리 라보리
바뤼흐 스피노자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블레즈 파스칼
코르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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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도르 도스토옙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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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폰 노이만
하인츠 폰 푀르스터
앙리 아틀란
르네 톰
고트하르트 귄터
조르주 바타유
레옹 브릴루앙
가스통 바슐라르
카를 마르크스
주요 아이디어복잡한 사고
카오스모스
구조주의 비판
루트비히 폰 베르탈란피의 체계 이론 비판
Autos(자가-(게노-페노)-에코-재조직)
개인 정보
배우자Violette Chapellaubeau (1945년 결혼)

2. 생애

에드가 모랭은 파리에서 태어난 세파라드 유대인 혈통의 프랑스 사상가이다.[19] 그의 가족은 오스만 제국테살로니키에서 마르세유를 거쳐 파리로 이주했다. 젊은 시절 사회주의에 관심을 가졌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독일 점령 하의 프랑스에서 프랑스 레지스탕스에 참여하고 프랑스 공산당에 가입하여 활동했다.[20] 이때부터 현재까지 사용하는 가명인 '모랭'을 쓰기 시작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잠시 독일 주둔 프랑스군에서 복무했으나, 곧 파리로 돌아와 공산당 활동에 전념했다. 그러나 그의 비판적인 태도로 인해 당과의 관계가 악화되었고, 결국 1951년 공산당에서 제명되었다. 같은 해 국립 과학 연구 센터(CNRS)에 들어가 본격적인 학문 연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 시기 그는 잡지 ''Arguments|아르귀망프랑스어''을 창간하고 편집했으며(1954–1962), 자신의 공산당 경험을 성찰하는 저서 ''Autocritique|오토크리티크프랑스어''(자아 비판, 1959)를 출간했다.

1960년대는 모랭의 활동 영역이 크게 확장된 시기였다. 라틴 아메리카를 광범위하게 여행하며 다양한 문화를 접했고, 프랑스로 돌아와 대중문화를 분석한 ''L'Esprit du Temps|레스프리 뒤 탕프랑스어''(시대 정신)을 출판했다. 또한 영화감독 장 루슈와 함께 시네마 베리테의 효시로 평가받는 영화 ''Chronique d'un été|크로니크 뒨 에테프랑스어''(어느 여름의 연대기)를 공동 제작했으며, 조르주 프리드만, 롤랑 바르트와 함께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 내 에드가 모랭 센터의 모태가 된 연구소 설립에 참여했다.[21]

이후 플로제베에서의 대규모 다학제 연구 프로젝트 참여, 1968년 5월 혁명 당시 학생 운동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 참여[22], 미국 캘리포니아주 라호야의 소크 연구소 방문(1969) 등 학문적, 사회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특히 소크 연구소에서의 경험은 그가 시스템 이론, 사이버네틱스, 정보 이론 등을 접하며 자신의 핵심 사상인 복잡성 이론을 발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23]

모랭은 이후에도 꾸준히 연구와 저술 활동을 지속하여 소련 체제를 분석하고 페레스트로이카를 예견한 ''De la nature de l’URSS|드 라 나튀르 드 루르스프랑스어''(소련의 본질, 1983) 등을 출간했으며, 콜레기움 인터내셔널 창설(2002)에 참여하는 등 국제적인 지식인으로서 활동했다. 2012년에는 사회학자 사바 아부에살람과 결혼했고,[24] 100세가 넘은 고령에도 공동 저술 작업을 통해 코로나19 팬데믹에 대한 성찰을 담은 책을 출간하는 등[25] 끊임없는 지적 열정을 보여주고 있다.

2. 1. 유년 시절과 교육

파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오스만 제국테살로니키에서 마르세유를 거쳐 파리로 이주한 세파라드 유대인 혈통이었다.[19] 어린 시절 모랭은 독서와 영화, 항공, 사이클링 등을 즐겼다. 그의 철학 연구는 17세기를 다양한 시각에서 탐구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인민 전선 운동과 스페인 내전 당시 스페인 공화 정부를 지지하면서 사회주의와 인연을 맺었다. 1940년 독일프랑스를 침공하자 툴루즈로 피신하여 난민을 돕는 일에 참여했다. 이후 프랑스 레지스탕스에 가담하여 활동했으며, 이때부터 '모랭'이라는 가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20] 1941년에는 게슈타포의 탄압을 받던 프랑스 공산당에 입당했다. 1944년 8월 파리 해방에도 참여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인 1945년, 비올레트 샤펠로보와 결혼하여 란다우에서 거주하며 독일 주둔 프랑스 점령군 중위로 복무했다. 1946년 파리로 돌아와 군 복무를 그만두고 공산당 활동에 전념했다. 그러나 점차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당과의 관계가 악화되었고, 결국 1951년 ''누벨 옵세르바퇴르''에 기고한 글로 인해 공산당에서 제명되었다. 같은 해, 여러 지식인의 추천을 받아 국립 과학 연구 센터(CNRS)에 합류했다.

CNRS에 합류한 모랭은 영화 연구에서 사회인류학 분야로 관심을 옮겨 초현실주의를 탐구했으며, 사회주의적 신념은 계속 유지했다. 그는 프랑코 포르티니, 로베르토 구이두치,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등과 교류하며 잡지 ''Arguments|아르귀망프랑스어''을 창간하고 편집했다(1954년~1962년). 이 시기 알제리 전쟁에 대한 프랑스의 개입에 반대하는 활동에도 참여했다. 1959년에는 공산당 가입과 탈퇴 과정에 대한 성찰과 이데올로기의 위험성을 다룬 저서 ''자아 비판''(Autocritique프랑스어)을 출판했다.

2. 2. 제2차 세계 대전과 레지스탕스

1940년 독일프랑스를 침공했을 때, 모랭은 툴루즈로 피신하여 난민을 돕는 일에 종사했고 프랑스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했다.[20] 프랑스 레지스탕스 활동 중 현재까지 사용하는 가명인 '모랭'을 쓰기 시작했다. 1941년 프랑스 공산당에 가입했는데, 당시 당은 게슈타포의 박해를 받고 있었다. 1944년 8월 파리 해방에 참여했다.

1945년 비올레 샤펠로보와 결혼하여 독일 란다우에 거주하며 독일 주둔 프랑스 점령군 중위로 복무했다. 1946년 파리로 돌아와 공산당 활동을 위해 군 복무를 그만두었다. 그러나 비판적인 태도로 인해 당과의 관계가 점차 악화되었고, 결국 ''누벨 옵세르바퇴르''(L'Observateur politique, économique et littéraire프랑스어)에 기고한 글을 이유로 1951년 당에서 제명되었다. 같은 해, 여러 지식인의 추천으로 국립 과학 연구 센터(CNRS)에 들어갔다.

2. 3. 공산당 탈퇴와 학문 연구

1946년 파리로 돌아온 모랭은 군 복무를 그만두고 프랑스 공산당 활동에 전념했다. 그러나 그의 비판적인 태도로 인해 당과의 관계는 점차 악화되었고, 결국 1951년 ''누벨 옵세르바퇴르'' (당시 ''프랑스 옵세르바퇴르'')에 기고한 글로 인해 당에서 제명되었다.

같은 해, 여러 지식인들의 추천을 받아 CNRS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학문 연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CNRS에서 그는 사회인류학초현실주의 등을 탐구하며 연구 영역을 넓혀나갔다. 사회주의 이념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은 채, 프랑코 포르티니, 로베르토 구이두치,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등과 교류하며 잡지 ''Arguments|아르귀망프랑스어''을 창간하고 편집했으며(1954–1962), 알제리 전쟁에 대한 프랑스의 개입에 항의하는 활동에도 참여했다. 1959년에는 자신의 공산당 가입과 탈퇴 경험을 성찰하며 이데올로기와 자기 기만의 위험성을 다룬 저서 ''자아 비판 (Autocritique)''을 출판했다.

1960년은 모랭에게 학문적, 활동적으로 중요한 해였다. 그는 라틴 아메리카의 브라질, 칠레, 볼리비아, 페루, 멕시코 등을 광범위하게 여행하며 토착 문화와 아프리카계 브라질인 문화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프랑스로 돌아와서는 대중문화를 분석한 저서 ''시대 정신 (L'Esprit du Temps)''을 출간했다. 같은 해, 사회학자 조르주 프리드만, 롤랑 바르트와 함께 파리 EHESS의 에드가 모랭 센터의 모태가 된 대중 커뮤니케이션 연구 센터 설립에 참여했으며,[21] 영화감독 장 루슈와 함께 시네마 베리테 및 다이렉트 시네마의 선구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 영화 ''어느 여름의 연대기 (Chronique d'un été)''를 공동 제작했다.

1972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심포지엄에 참석한 에드가 모랭


1965년부터는 플로제베(Plozévet)에서 과학 기술 연구 위원회(DGRST)의 지원을 받는 대규모 다학제적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러나 2년 후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을 때, 그의 학제적인 접근 방식은 기존 학계로부터 '이단'으로 취급받기도 했다. 이 경험은 그가 파리 중심의 학계와 거리를 두고 활동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1968년, 낭테르 대학교에서 앙리 르페브르 교수를 대신해 강의하면서 당시 프랑스 사회를 뒤흔든 학생 운동에 깊이 관여하게 되었다. 5월 혁명이 발발하자 ''르몽드''지에 "학생 코뮌", "얼굴 없는 혁명" 등의 제목으로 사태를 분석하는 글을 연재했으며, 코르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 클로드 르포르와 함께 ''5월 68: 브레시''를 공동 저술하며 혁명의 의미를 기록했다.[22]

1969년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라호야에 있는 소크 연구소에서 1년을 보냈다. 조나스 소크의 초청으로 방문한 이곳에서 그는 유전학 혁명과 더불어 시스템 이론, 사이버네틱스, 정보 이론 등을 접하며 자신의 핵심 사상인 '복잡성' 개념을 발전시키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다. 또한 그레고리 베이트슨의 사상과 생태학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였다.[23]

이후에도 모랭은 왕성한 연구와 저술 활동을 이어갔다. 1983년에는 소련 공산주의 체제를 분석하고 미하일 고르바초프페레스트로이카를 예견한 저서 ''소련의 본질 (De la nature de l’URSS)''을 출판했다. 2002년에는 국제 윤리, 과학 및 정치 콜레기움 창설에 참여했으며, 같은 해 다리우스 샤예간과 함께 이란을 방문하는 등 국제적인 활동도 지속했다.

2. 4. 라틴 아메리카 여행과 대중 문화 연구

1960년, 모랭은 라틴 아메리카를 광범위하게 여행하며 브라질, 칠레, 볼리비아, 페루, 멕시코를 방문했다. 그는 이 여행에서 토착 문화와 아프리카계 브라질인 문화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프랑스로 돌아온 후, 그는 대중 문화를 다룬 저서 ''시대 정신''(L'Esprit du Temps프랑스어)을 출판했다.

같은 해(1960년), 프랑스 사회학자 조르주 프리드만은 모랭과 롤랑 바르트를 초청하여 대중 커뮤니케이션 연구 센터를 설립했다. 이 센터는 여러 차례 명칭 변경을 거쳐 현재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의 에드가 모랭 센터가 되었다.[21]

또한 1960년, 모랭은 장 루슈와 함께 영화 어느 여름의 연대기(Chronique d'un été프랑스어)를 공동으로 제작하고 감독했다. 이 영화는 초기 ''시네마 베리테''와 다이렉트 시네마의 중요한 사례로 평가받으며, 영화 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이후 모랭은 영화계와 지속적으로 교류했다. 1965년에는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 심사위원을 맡았으며, 같은 해 개봉한 앙리 카레프 감독의 영화 ''진실의 시간''(L'Heure de la vérité프랑스어)의 각본을 감독과 공동으로 집필하기도 했다.

2. 5. 플로제베 연구와 학생 운동

1965년부터 모랭은 플로제베(Plozévét)에서 과학기술연구 대표 파견단(DGRST)의 자금 지원을 받는 대규모 다학제적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는 플로제베에서 생활하며 1965년 한 해 동안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현지 조사를 수행했다. 2년 후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을 때, 그의 작업이 지닌 학제 간 경계를 넘나드는 성격 때문에 DGRST는 모랭을 비주류로 간주했다. 이 사건은 모랭이 파리의 주류 학계에 대해 더욱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만들었고, 이후 파리 외부에서의 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계기가 되었다.

1968년, 모랭은 낭테르 대학교에서 당시 철학과 교수였던 앙리 르페브르의 자리를 이어받았다. 그는 프랑스에서 막 시작되던 학생 봉기에 깊이 관여하게 되었다. 1968년 5월, 그는 르몽드지에 "학생 코뮌"이라고 명명한 현상을 분석하고 이해하려는 일련의 글을 기고했다. 그는 5월 혁명의 전개 과정을 면밀히 지켜보며, "얼굴 없는 혁명"이라는 제목의 두 번째 기사 시리즈를 르몽드에 연재했다. 또한 코르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 클로드 르포르와 함께 『5월 68: 브레시』(''Mai 68: La Brèche'')를 공동으로 저술했다.[22]

2. 6. 소크 연구소와 복잡성 이론

1969년, 모랭은 캘리포니아주 라호야에 위치한 소크 연구소에서 1년을 보냈다.[23] 이 방문은 조나스 소크가 자크 모노와 존 헌트의 추천을 받아, 배우는 것 외에는 다른 조건을 달지 않고 모랭을 초청하면서 이루어졌다.[23] 당시 '노벨상의 요람'이라 불리던 소크 연구소에서 모랭은 시스템 이론에 깊이 익숙해지는 계기를 가졌다.[23] 그는 앙리 라보리, 제임스 왓슨, 스테판 루파스코, 브로노프스키 등의 저작을 탐독했으며, 그레고리 베이트슨의 사상과 당시 새롭게 제기되던 '생태학의 새로운 문제'들을 접했다.[23] 또한, DNA 발견으로 시작된 유전학 혁명을 접하면서 사이버네틱스, 정보 이론, 일반 시스템 이론에 대한 자신만의 관점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받았다. 소크 연구소에서의 경험은 모랭이 이후 복잡성에 대한 독자적인 사유 체계를 구축하는 데 중요한 지적 자양분이 되었다.

2. 7. 최근 활동

1983년에는 『소련의 본질 - 전체주의적 복합체와 새로운 제국』(De la nature de l’URSSfra)을 출판하여 소비에트 공산주의 분석을 심화하고, 미하일 고르바초프페레스트로이카를 예견하기도 했다.

1991년에는 33명의 감독이 참여한 옴니버스 영화 『망각에 항거하며』 중 알랭 코르노 감독이 연출한 단편 'Ali Muhammad al-Qajiji, Lybiefra'에 출연하기도 했다.

2002년에는 '국제 윤리, 과학 및 정치 콜레기움' 창설에 참여했으며, 같은 해 다리우스 샤예간과 함께 이란을 방문했다.

2009년 모로코 페스의 음악 축제에서 사회학 교수 사바 아부에살람을 만나 2012년 결혼했다.[24] 이후 부인과 함께 '남자는 여자 앞에서 약하다'(L'homme est faible devant la femmefra, 2013), '방식을 바꾸자 - 코로나바이러스의 교훈'(Changeons de voie - Les leçons du coronavirusfra, 2020) 등을 공동 저술했다.

2022년에는 사회학자 에이미 히스-카펜티에와 함께 32편의 에세이를 묶은 '[https://www.jstor.org/stable/j.ctv3029jw9 복잡성의 도전: 에드가 모랭의 에세이]'를 출판하며, 101세의 나이에도 활발한 학문 활동을 이어갔다. 이 책을 통해 그의 주요 저작 일부가 처음으로 영어로 번역되어 소개되었다.[25]

3. 주요 사상

에드가 모랭은 프랑스의 포스트모던이나 포스트구조주의와 같은 주류 지적 흐름과는 거리를 두고 자신만의 독자적인 사상 체계를 구축했다.[27] 이러한 독자 노선 때문에 그의 이론은 푸코데리다처럼 미국 학계에서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유럽과 라틴 아메리카를 중심으로 학술 및 대중 영역에서 폭넓은 영향력을 행사해왔다.[27][31] 그는 ''Sciences Humaines''[26]나 ''르 몽드''[27]와 같은 주요 매체에서도 비중 있게 다뤄졌다.

모랭 사상의 핵심은 복잡성 사고(Complex Thought)와 초학제성(Transdisciplinarity)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는 유네스코 복합사고 의장을 역임했으며, 초학제성의 창시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28] '복잡성'은 세상을 파편화하지 않고 연결성과 불확실성을 포용하려는 인식론적 태도이며, '초학제성'은 분과 학문의 경계를 넘어 현실 문제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려는 접근 방식이다.[28] 이러한 사상은 그의 대표 저작인 『방법』(La Méthodefra)에 잘 나타나 있다.[44]

그의 사상은 특히 남유럽, 라틴 아메리카, 프랑스어권 아프리카에서 강한 영향력을 보여왔으며, 최근에는 중국과 일본에서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31]

3. 1. 복잡성 사고

모랭의 인식론적 작업은 "복잡성"이라고 불리는 개념을 통해 "이데올로기, 정치, 과학"의 삼각 관계를 재고하려는 시도로 평가받으며, 이 때문에 "혁명적"으로 간주되기도 한다.[44] '복잡성'은 단순히 '단순함'의 반대 개념이 아니라, 하나의 '방법'으로서 제시된다. 이 방법은 "단순함이란 언제나 무언가를 단순화시킨 결과일 뿐"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세계가 가진 본질적인 "수수께끼를 존중"하는 태도를 강조한다.[44]

이러한 복잡성 사고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는 총 6권으로 구성된 모랭의 대표 저작 『방법』(La Méthodefra)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은 단순한 과학 이론서가 아니라, 20세기의 복잡한 현실 속에서 던지는 중요한 메시지로 평가받는다.[44]

알폰소 몬투오리(Alfonso Montuori)는 『에드가 모랭: 부분적인 소개』(Edgar Morin: A Partial Introduction)에서 『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44]

: 6권의 『방법』은 아마도 모랭이 이룩한 가장 중요한 업적일 것이다. 이는 놀랍고도 무궁무진한 보물창고이며, 통찰력과 성찰, 그리고 현실적인 지침을 담고 있어 인류가 마주한 근본적인 질문의 본질을 탐구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큰 영감을 준다. 사이버네틱스, 정보 이론, 시스템 이론 등을 참조하면서도, 모랭은 영화 연구에서 보여준 상상력에 기반한 작업부터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평생에 걸쳐 수행해 온 다양한 연구를 이 책에 통합했다. 『방법』은 모랭의 지적 여정을 집대성하며, 독자들에게 전통적인 사고방식과 현대 사회의 여러 문제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다.[44]

3. 2. 방법론 (La Méthode)

모랭의 인식론적 작업은 "복잡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이데올로기, 정치, 과학의 삼각 관계를 재고하려는 시도로, "혁명적"으로 평가받기도 한다.[44] "복잡"은 단순히 '단순함'의 반대 개념이 아니라 하나의 "방법"으로서 제시된다. 이 방법은 "단순이란 언제나 단순화된 무언가일 뿐"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이를 통해 우주가 가진 "수수께끼를 존중"하는 태도를 견지한다.[44]

이러한 그의 사상은 총 6권으로 구성된 주저 『방법』(La Méthodefra)에 집대성되어 있다. 이 책은 단순한 과학적 연구 프로젝트를 넘어, 20세기 지성사 속에서 등장한 복잡한 메시지로 평가받는다.[44]

알폰소 몬투오리는 『에드가 모랭: 부분적인 소개』에서 『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44]

:5권의 『방법』은 아마도 모랭이 이룩한 업적이며, 놀랍고도 무궁무진한 보물이며, 통찰력, 성찰과 현실적인 매뉴얼의 발굴이며, 인류의 의문점의 본질을 확장하는 데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사이버네틱스나 정보 이론, 시스템 이론을 인용하면서도, 모랭이 지금까지 해왔던 작업을 융합하여, 영화에 대한 연구에서 이뤄진 상상력에 기반한 작업에서부터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에 이르기까지, 『방법』은 모랭의 여정을 융합하고, 전통적인 외양과 현대적인 의문에 대한 대안을 독자에게 제공한다.[44]

(알폰소 몬투오리는 5권으로 언급했으나, 『방법』은 실제로는 총 6권으로 구성되어 있다.[44])

3. 3. 초학제성 (Transdisciplinarity)

모랭은 프랑스 포스트모던이나 포스트구조주의 운동의 흐름을 따르기보다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연구 방향을 추구했다. 이러한 독자 노선으로 인해 그의 이론은 푸코, 데리다, 갈리농-멜레넥 등 다른 프랑스 사상가들의 이론처럼 미국 학계의 주요 담론으로 자리 잡지는 못했다. 그러나 모랭의 연구는 학술 문헌과 대중 저술 양쪽에서 폭넓게 다뤄졌으며, 프랑스의 ''Sciences Humaines''[26]나 유력 일간지 ''르 몽드''의 특별호 표지를 장식하는 등 높은 인지도를 보였다.[27]

모랭은 유네스코 복합사고(Complex Thought) 의장을 역임했으며, 특히 여러 학문 분과를 넘나드는 접근 방식인 초학제성(Transdisciplinarity)의 창시자 중 한 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학문적 업적을 인정받아 메시나, 제네바, 밀라노, 베르가모, 테살로니키, 라 파스, 오덴세, 페루자, 코센차, 팔레르모, 누에보 레온, 라발 대학교 (퀘벡), 브뤼셀, 바르셀로나, 과달라하라, 발렌시아, 베라크루스, 산티아고, 포르투알레그레 가톨릭 대학교, 히우그란데두노르치 연방 대학교, 칸디두 멘데스 대학교 (리우데자네이루) 등 세계 여러 대학에서 총 21개의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다.[28]

그의 초학제적 방법론과 철학을 기리는 여러 학술 기관이 설립되어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대표적인 기관은 다음과 같다:

  • 파리 에드가 모랭 센터(Centre Edgar-Morin): 고등 사회 과학 연구원(EHESS) 및 프랑스 국립 과학 연구 센터(CNRS) 소속 대학원 교육 및 연구 부서 (구 초학제 연구 센터 CETSAH). 사회학, 인류학, 역사 연구.[28][31]
  • 이탈리아 메시나 메시나 대학교 부설 복잡성 연구를 위한 에드가 모랭 센터[28][31]
  • 멕시코 Multiversidad Mundo Real Edgar Morin 대학교[29][28][31]
  • 페루 리마 리카르도 팔마 대학교 부설 연구 센터[28][31]


모랭의 삶과 사상은 여러 전기 영화, 다큐멘터리 영화, TV 프로그램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 그의 연구는 특히 남유럽, 라틴 아메리카, 프랑스어권 아프리카 지역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으며, 최근에는 중국과 일본에서도 그의 사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31]

2021년, 모랭의 100세 생일을 맞아 프랑스, 이탈리아, 라틴 아메리카 등지에서 기념 행사가 열렸고, 그의 사상과 업적을 기리는 여러 편의 에세이 모음집이 출판되었다.[31][30] 같은 해 바스티유의 날,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은 모랭에게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의 그랑크루아 훈장 기사(Grand-Croix) 등급을 수여하며 그의 공로를 기렸다.[31]

4. 비판

모랭은 프랑스의 포스트모던이나 포스트구조주의 운동을 수용하는 대신 독자적인 연구 방향을 추구했다. 이러한 이유로 그의 이론은 푸코, 데리다, 갈리농-멜레넥 등 다른 프랑스 사상가들의 이론처럼 미국 학계의 주요 담론으로 편입되지는 못했다.

5. 저서

에드가 모랭의 주요 저서 목록
연도원제
1946'LAn zéro de lllemagne
1947Allemagne notre souci
1948Une sale histoire
1948'LHomme et la Mort''
1956'Le Cinéma ou lHomme imaginaire''
1957Les Stars
1959Autocritique
1962'LEsprit du temps. Essai sur la culture de masse''
1967Commune en France. La métamorphose de Plodémet
1968Mai 68, la brèche ( 코르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 클로드 르포르 공저)
1969'La Rumeur dOrléans''
1969'Introduction à une politique de lhomme''
1969Le Vif du sujet
1970Journal de Californie
1973Le Paradigme perdu: la nature humaine
1974'Lunité de lomme
1977La Méthode (총 6권, 1977-2004)
1981Pour sortir du siècle XX
1982Science avec conscience
1983De la nature de l’URSS
1984Le Rose et le Noir
1984Sociologie
1987'Penser lEurope''
1988Mais...
1989Vidal et les siens
1990Introduction à la pensée complexe
1993Terre-Patrie (Anne-Brigitte Kern 공저)
1994Mes démons
1995Les Fratricides : Yougoslavie-Bosnie (1991-1995)
1995Une année Sisyphe
1997Comprendre la complexité dans les organisations de soins
1997Une politique de civilisation
1997Amour, Poésie, Sagesse
1999'LIntelligence de la complexité''
1999Relier les connaissances
1999La Tête bien faite : repenser la réforme, réformer la pensée
2000'Les Sept savoirs nécessaires à léducation du futur''
2000Dialogue sur la nature humaine
2001Journal de Plozévet, Bretagne, 1965
2002Dialogue sur la connaissance. Entretiens avec des lycéens
2002Pour une politique de civilisation
2003La Violence du monde (장 보드리야르 공저)
2003'Éduquer pour lère planétaire, la pensée complexe comme méthode dapprentissage dans lerreur et lncertitude humaine
2003Université, quel avenir?
2003Les Enfants du ciel : entre vide, lumière, matière
2004Pour entrer dans le siècle XXI
2005Culture et Barbarie européennes
2006Itinérance
2006Le Monde moderne et la question juive
2007'LAn I de lre écologique
2007Où va le monde ?
2007'Vers labîme ?''
2008Mon chemin
2008Vive la politique ?
2009Crises
2009La Pensée tourbillonnaire
2009'Edwige, linséparable''
2010Pour et contre Marx
2010Ma gauche
2010Comment vivre en temps de crise?
2011'La Voie : pour lavenir de lumanité
2011'Conversation pour lavenir''
2011Dialogue sur la connaissance : Entretiens avec des lycéens
2011Mes philosophes
2011'Le Chemin de lespérance''
2012La France est une et multiculturelle. Lettre aux citoyens de France
2013Mon Paris, mes souvenirs
2013La Rencontre improbable et nécessaire (Sabah Abouessalam 공저)
2014Notre Europe : Décomposition ou métamorphose
2014Au péril des idées
2014Enseigner à vivre. Manifeste pour changer l’éducation
2015Avant, pendant, après le 11 janvier
2015Impliquons-nous ! Dialogue pour le siècle
2015'Penser global : Lhumain et son univers''
2016'Pour lesthétique''
2016Pour une crisologie
2016'Ecologiser lHomme''
2017Connaissance, Ignorance, Mystère
2017'LÎle de Luna''
2017'LUrgence et lssentiel
2017Le temps est venu de changer de civilisation
2017Où est passé le peuple de gauche ?
2018Pour résister à la régression
2018Le cinéma : un art de la complexité
2019La Fraternité, pourquoi ?
2019Chronique d’un été
2019Les souvenirs viennent à ma rencontre
2020Quelle école voulons-nous ? La passion du savoir (Jean-Michel Blanquer 공저)
2020Sur la crise : Pour une crisologie ; suivi de Où va le monde ?
2020Changeons de voie : Les leçons du coronavirus (Sabah Abouessalam 공저)
2020'Lentrée dans lre écologique
2021'Frères dâme, entretien avec Pierre Rabhi sous la direction de Denis Lafay''
2021'Leçons dun siècle de vie''
2022Réveillons-nous !
2022The Challenge of Complexity: Essays by Edgar Morin (Edited by Amy Heath-Carpentier)


6. 수상 및 서훈

모랭은 초학제성의 창시자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으며, 유네스코 복합사고 의장을 맡고 있다. 그는 전 세계 여러 대학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다.[28]

명예 박사 학위 수여 대학[28]
국가대학
이탈리아메시나, 밀라노, 베르가모, 페루자, 코센차, 팔레르모
스위스제네바
그리스테살로니키
볼리비아라 파스
덴마크오덴세
멕시코누에보 레온, 과달라하라, 베라크루스
캐나다라발 대학교 (퀘벡)
벨기에브뤼셀
스페인바르셀로나, 발렌시아
칠레산티아고
브라질포르투알레그레 가톨릭 대학교, 히우그란데두노르치 연방 대학교, 칸디두 멘데스 대학교 (리우데자네이루)



또한 그의 초학제적 방법론과 철학을 기리기 위해 여러 학술 기관이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28][31]

에드가 모랭의 이름을 딴 기관[28][31]
국가기관명소속/설명
프랑스에드가 모랭 센터파리 소재, 고등 사회 과학 연구원 (EHESS) 및 프랑스 국립 과학 연구 센터 (CNRS) 소속 대학원 교육 및 연구 부서 (구 초학제 연구 센터, 사회학, 인류학, 역사, CETSAH)
이탈리아복잡성 연구를 위한 에드가 모랭 센터시칠리아 메시나 소재, 메시나 대학교 소속
멕시코Multiversidad Mundo Real Edgar Morin대학교[29]
페루연구 센터리마 소재, 리카르도 팔마 대학교 소속



2021년 바스티유의 날에는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에 의해 레지옹 도뇌르 최고 등급인 그랑크루아 훈장 기사(Grand-croix)의 품위에 올랐다.[31]

참조

[1] 간행물 Entretien avec Edgar Morin (2) : Science et philosophie https://web.archive.[...] nonfiction.fr 2008-04-10
[2] 서적 Complexity and Sustainability Routledge 2012
[3] 서적 Routledge International Handbook of Diversity Studies Routledge 2014
[4] 웹사이트 Edgar Morin, Mes philosophes http://www.lepoint.f[...]
[5] 웹사이트 Brigitte Chamak, "Le Groupe des Dix" https://searchworks.[...]
[6] 웹사이트 Edgar Morin, Mes philosophes http://www.lepoint.f[...]
[7] 웹사이트 Edgar Morin, Mes philosophes http://www.lepoint.f[...]
[8] 웹사이트 An encyclopaedic spirit http://www.radicalph[...] Radical Philosophy 1997-12-30
[9] 서적 After the Deluge: New Perspectives on the Intellectual and Cultural History of Postwar France Lexington Books 2004
[10] 웹사이트 On Complexity http://www.hamptonpr[...] Edgar Morin
[11] 웹사이트 "Restricted complexity, general complexity" https://arxiv.org/ab[...] Edgar Morin 2005
[12] 서적 History of Structuralism: The sign sets, 1967-present, Volume 2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97
[13] 서적 Art and Sustainability: Connecting Patterns for a Culture of Complexity transcript Verlag 2014
[14] 논문 From the concept of system to the paradigm of complexity 1992
[15] 웹사이트 Rethinking the Essence of Human and Other-Than-Human Communication in the Anthropocene Epoch: A Biosemiotic Interpretation of Edgar Morin’s “Complex Thought”. https://www.mdpi.com[...] 2018
[16] 문서 Edgar Morin ou l'éloge de la pensée complexe, CNRS Le Journal .
[17] 뉴스 Edgar Morin, un siècle de sagesse en trois leçons https://theconversat[...] 2021-07-07
[18] 서적 Vidal et les siens Seuil 1989
[19] 서적 Vidal and His Family: From Salonica to Paris: The Story of a Sephardic Family in the Twentieth Century Sussex Academic Press 2009
[20] 간행물 Talking to Edgar Morin: Defining dialogue 2004-01
[21] 웹사이트 Centre Edgar-Morin http://www.iiac.cnrs[...] iiac
[22] 웹사이트 PARIS MAY '68 AND PROVO AMSTERDAM '65 http://www.cicerofou[...]
[23] 서적 "Penser avec Edgar Morin, Lire La Méthode" Presses de l'Université Laval
[24] 간행물 L'humanisme selon Edgar Morin 2016-07
[25] 웹사이트 The Challenge of Complexity: Essays by Edgar Morin https://www.liverpoo[...]
[26] 웹사이트 Sciences Humaines http://www.sciencesh[...]
[27] 웹사이트 Le Monde https://www.lemonde.[...]
[28] 간행물 COMPLEX THOUGHT: An Overview of Edgar Morin's Intellectual Journey 2013-06
[29] 웹사이트 Home page https://multiversida[...]
[30] 웹사이트 Edgar Morin a 100 ans, joyeux anniversaire au plus sémillant de nos philosophes https://www.telerama[...] Télérama 2021-07-08
[31] 서적 The Challenge of Complexity: Essays by Edgar Morin https://books.google[...] Liverpool University Press 2022
[32] 서적 Introduction à la pensée complexe Seuil 2005
[33] 웹사이트 "Le monde d'après", selon Edgar Morin https://www.lesechos[...] 2020-06-12
[34] 웹사이트 L'entrée dans l'ère écologique d'Edgar Morin https://esprit.press[...] 2020-07
[35] 서적 Worldviews, Science, and Us: Philosophy and Complexity World Scientific 2007
[36] 서적 Complexity and Sustainability Routledge 2012
[37] 서적 Routledge International Handbook of Diversity Studies Routledge 2014
[38] 뉴스 Edgar Morin, Mes philosophes http://www.lepoint.f[...]
[39] 뉴스 Edgar Morin, Mes philosophes http://www.lepoint.f[...]
[40] 뉴스 Edgar Morin, Mes philosophes http://www.lepoint.f[...]
[41] 뉴스 Edgar Morin, Mes philosophes http://www.lepoint.f[...]
[42] 웹사이트 An encyclopaedic spirit http://www.radicalph[...] Radical Philosophy 1997-12-30
[43] 뉴스 Edgar Morin, Mes philosophes http://www.lepoint.f[...]
[44] 간행물 Edgar Morin: A partial introduction http://www.ciis.edu/[...] California Institute of Integral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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